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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소식

2011.9.24.한국문화사 남도문화탐방 7 ( 명량대첩 과 울돌목 )

 

 명량대첩 (울돌목)

울돌목은 바다가 운다고 하여 한자어로 명량(울명 鳴 대들보량梁)이라 불리운다

 

해남군 우수영과 진도군 녹진 사이를 잇는 가장 협소한 해협으로 넓이가 300여m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20m 유속이 11,5노트 (약 24km) 달해 굴곡이 심한 암초 사이를 소용돌이치는 급류가 흐른다

 

이러한 빠른 물길이 암초와 부딪쳐 튕겨져 나오는 바다소리가 20리 밖까지도 들린다고 한다

이러한 지형의 특징이 임진왜란(정유재란)당시 133척 왜선들에게 참패를 안겨준 큰 요인이 되었다

 

 

 

 

이순신장군이 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하던 중 나라의 위태로움 떄문에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고 그날로 장흥회령포에

이르러 간신히 13척의 배를 수습하여 하여 우수영에 당도하였다

 

이때 왜군들은 3백 3십여척에 2만명의 왜군을 싣고 울돌목을 통과하여 예성강으로 진출 이미 직신에 머물러 있던 육군과 합세하여

한양으로 침범하려는 계획이었으며 일본군이 울돌목 장악은 중요한 과제였다

 

임진년 전라수사로 있을때부터 울돌목의 지형조건을 파악한 장군은 치밀하게 준비해 나갔다

쇠사슬 두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 몰렸다 할 수 있도록 울돌목에 장치해 두고 장수들을 불렀다

 

방법에 이르기를 죽으려고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사람을 두럽게 할 수 있다하였으니

이것은 지금의 우리를 말함이라 공들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명령을 어기지말라

나라를 위해 죽기로서 싸워라 만일 조금이라도 명을 어기는 자는군법을 시행하리라 하여 임전결의를 다졌다

 

 

1597년9월 16일 새벽 드디어 일본 수군들은 133척의 전선으로 어란포를 지나 밀물을 타고 명랑으로 공격해 왔다

이순신장군이 13척 배로 이를 공격하니 왜선이 이순신장군의 배를 포위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죽을 힘을 다하여 항전하였다

 

이떄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서자 조선수군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화포를 쏘아 되니

왜군들은 기세가 꺽인채 도망가느라 바빴다

 

이때 대파된 왜선은 31척이오 전함으로서 기능을 상실한 적선은 92척이니

세계해전사상 찾아보기 힘든 대승리였다  

 

 

 

 

 

의병항쟁 1.2.

 

1.조응량 부자와 양응지 숙질이 의병으로 참전하여 낫과 괭이 등 연장으로 적을 무찌르다

     전사함을 기리기 위한 의병항쟁 참전군 상임이 있었다  

 

2.마하수일가의 부친이 적서에 포위된 통제사를 구하다 전사하자

      그 시신을 안고 복수를 맹세한 마씨 형제들의 결사항전을 기린 상임을 볼 수 있었다

 

명량을 최후이 결전장으로 삼고 장흥 회령포에 당도한 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다섯명의 장군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 상임 앞에 고개를 숙인다

 

 

 

울돌목 앞바다 !

물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처음본 나로서는 신비에 가까운 현상이랄까?

묘한 모습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쪽은 물이 흘려가는데 한 가운데 물은 커다랗게 둥근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자연의 신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난 가슴이 뛰었다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어마 어마한 자연의 현상 앞에 ...그만 모든 생각이 멈추는 것 같았다

흐르는 올돌목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

말하지 않아도 더 큰 가슴으로  ...하늘을 본다

 

 

 

 

 

 

역사 앞에서 ..

가슴에 와닿는것이 있으니

선조님의 지혜를 배우고 또한 감사와 존경하는 마음으로 발길 옮겨본다

 

 

삶의 향기로  

9월의 문화탐방 마무리 한다